엄마는 보물찾기 중, 김은영


Who

김은영, 43세. 영문학을 전공했고 문화, 예술 전반에 관심이 많아 십 년 넘게 이 분야 파워블로거로 활동했다. 그림을 보는걸 좋아하지만 모르는 것도 많았기에 열심히 공부하며 블로그를 운영했다. 덕분에 예술에 쉽게 다가가는 글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고, 왠만한 전시는 큐레이터의 초청으로 참석하여 관람 할 만큼 활발한 활동을 했다.


하지만 마흔에 얻은 딸아이의 육아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전시 한번 보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했고, 힘들게 찾아간 전시장은 딸아이 때문에 바삐 돌아 나오기 일쑤다. 그래도 오랜 취미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 힘들다는 푸념을 하면서도 여러 전시의 서포터즈로 지원하며 문화생활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진정한 예술애호가다.




늦게 시작한 육아

결혼 전에도 에너지가 많은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새로운 데가 있으면 가보고 싶은 마음에 사부작 사부작 찾아 다니곤 했죠. 그런데 아이가 생기니 체력이 저질인 것이 확연히 드러나더라고요. 늦게 결혼한 것을 후회해본 적이 없는데 체력이 딸리기 시작하니 아이에게 미안하고 후회가 되었어요. 조리원 동기들과 아직도 만나는데 삼십대 초반인 친구들은 겁도 없고 체력도 좋아 어디 놀러 가자는 얘기도 잘해요. 매번 제가 파토를 놓는데 나도 젊었으면 그랬을까 생각이 들어요.


아이 데리고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은데 남편과 같이 가는게 아니면 엄두가 안나요. 겁이 많아서 운전도 못하거든요. 아이 낳고 한동안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과 관절통을 겪었어요. 너무 힘들었는데 아이가 커갈수록 제 체력도 조금씩 나아지긴 하네요.




에너제틱 써니

남편과 홍콩 여행을 갔을 때 임신이 되었어요. 그래서 태명도 홍콩이에요. 아시아와 서양의 문화가 융합된 도시인 홍콩처럼 매력적인 아이가 태어나길 바란다고 태교일기에도 적었어요. 그랬더니 진짜 홍콩처럼 정신 없고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는 아이가 태어났네요. 써니는 새로운 곳에 가면 뭐든지 한번씩 다 해봐야 할 정도로 호기심이 많고, 운동신경도 좋아서 밖에서 뛰어 노는 것을 좋아해요. 애교도 많고 몸을 쓰는 것에 겁이 없어요.



그런데 저는 원래 못 하는 게 많은 사람이에요. 아이 없이 살았을 땐 그래도 꽤 괜찮게 포장할 수 있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제 바닥이 다 보이는 거에요. 항상 피곤에 쩔어 있고 여유와 웃음도 없어졌어요.


제가 요리도 잘 못해요. 그런데 아이가 노는 것만 좋아하고 입이 짧아 밥을 잘 안 먹는 거에요. 엄마가 요리를 싫어하니 음식 먹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아서 언제까지 요리를 못하고 있을 수만은 없더라고요. 엄마가 싫어하면 아이도 은연중에 그걸 습득하게 되요. 내가 못 하는 거지 아이가 못 하는 게 아닌데 나도 모르게 내가 잘하는 것만 시키려고 하죠. 그런 경계를 허무는 게 필요해요. 아이는 해낼 수 있으니까요. 저 혼자였다면 못한다 무섭다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을 아이가 하니 하게 되더라고요. 아이로 인해 나의 한계를 조금씩 뛰어넘고 있어요.




발품 파는 가족

예전처럼 미술 전시를 너무 가고 싶은데 저희 딸은 어두운 곳도 싫어하고, 한자리에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전시장에 가면 바로 뛰어나오기 일쑤에요. 그래서 방법을 찾은 게 제가 가고 싶은 전시의 서포터즈가 되는 거였어요. 서포터즈 활동기간 동안에는 전시관람이 무료이기 때문에 전시를 보러 갔다가 아이 때문에 다시 나와도 부담이 없어요. 다음에 또 오면 되니까요. 공연이나 체험도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 무료로 진행되는 것들로 잘 찾아서 가요.



힘이 넘치는 부모가 아니다 보니 아이와의 여행도 호팩(호텔패키지)을 주로 가요. 호텔은 비싸다고 생각되지만 저희 남편이 싼 딜을 정말 잘 찾거든요. 연회비가 비싸도 호텔라운지 무료이용이나 상품권 증정 등 혜택으로 돌려 받을 수 있는 카드를 쓰고, 포인트를 많이 쌓아서 이벤트 할 때를 주시하고 있다가 저렴하게 예약해서 가요. 남편 덕분에 단돈 만원에 호텔을 이용 해본 적도 있어요. 돈도 절약하고, 휴식도 취하고, 아이는 물놀이도 실컷 할 수 있어서 좋아요. 하고 싶은거, 사고 싶은거 다 하려면 돈을 많이 벌거나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데 저희 가족은 열심히 발품을 파는 거죠.



든든한 육아동지 ‘보물찾기’

활동적이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인데 제가 체력이 없고, 아이와 놀아주는 것에 재능이 없어서 힘들어하던 때에 우연히 ‘보물찾기’라는 모임을 만나게 됐어요. 본래는 교회를 같이 다니시는 분들이 시작한 모임이었는데 어쩌다 저도 껴서 아이들을 위한 숲놀이를 함께 하게 되었어요. 지자체에서 지원도 받고, 숲 선생님을 모셔서 1년 정도 진행했어요.



지금은 숲놀이 대신 엄마표 영어를 위한 공부를 함께 하고 있어요. 모임시간이 3~4시간 되기 때문에 영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들끼리 재능공유를 해서 어떤 날은 모기퇴치제도 만들고, 베이킹도 하고, 밥도 해먹으면서 즐겁게 놀아요. 리더인 친구가 워낙에 포용력이 좋고 솔선수범하는 성격이라 모임이 잘 유지되는 것 같아요.


혼자였다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일들이 함께여서 가능해 진 경우도 많아요. 유독 걱정 많은 엄마인 제게 ‘괜찮아’라고 얘기해주는 엄마들 덕분에 항상 용기를 얻어요. 아이가 아플 때도 병원에 달려가기보다 모임에 알리면 실질적인 조언을 바로 들을 수 있어요. 마음이 힘들 때도 수다를 떨며 털어놓는 것 만으로도 에너지가 회복되고 위로가 되요.


늦은 결혼과 출산으로 결혼 전 친구들과는 많이 멀어졌는데 아이로 인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 거에요. 모임 안에서 무엇이든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어서 ‘보물찾기’인 것 같아요. 요즘은 제 전공이 영문이라는 이유로 모임에서 영어공부를 담당하고 있는데 보수를 받고 하는 것도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내가 책임을 지고 하는 일이 있다는 게 큰 활력이 되고 있어요.




쉽게 시작하는 엄마표 영어

저는 아이에게 영어를 일부러 시킬 생각이 없었어요. 유난히 말이 느려서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였고, 남편도 저도 영어를 쓰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젠간 아이도 자연스레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이가 영어 동영상을 보고 따라 하고, 문자에 대한 질문도 많이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 반응을 보니 부모입장에서 열심이 생기더라고요.


저는 요즘 세상에 영어 못하는 사람 없지 않나 생각했었어요. 학창시절에 영어공부 안 해 본 사람 없잖아요. 그런데 막상 엄마들과 이야기 해보니 학교 졸업한 이후로는 영어와 담 쌓고, 읽을 줄은 알아도 말하는 건 어려워 한다는 걸 알았죠. 너도나도 엄마표 영어를 하겠다고 하지만 엄마가 영어를 힘들어하면서 가능할 리 없어요. 제가 생각하는 엄마표 영어는 엄마가 영어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어를 싫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아이를 붙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연스럽게 영어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에요.



엄마들과 영어공부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도 아주 쉽게 시작한다는 거에요. 시중의 엄마표 영어교재를 보면 이런걸 영어 초보 엄마들이 어떻게 배워서 할까 싶을 정도로 어렵고 딱딱한 표현이 많아요. 그래서 지레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많을 것 같아요. 미디어에서도 엄마가 영어를 많이 써줘서 영재가 되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런걸 보면 엄마들에겐 부담만 되고 나 때문에 내 아이가 영어를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죠. 하지만 아이들은 영어동요만 틀어줘도 좋아해요. 엄마가 영어를 유창하게 안 해도 아이는 영어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어요.



엄마들의 영어공부

아이들을 가르치기 전에 엄마가 먼저 배워보자고 시작한 공부에요. 책을 정해서 에피소드 별로 몇 문장씩 외우고, 역할을 바꿔서 테스트도 해요. 발음이 안 좋고 창피하더라고 우리끼리는 용기를 내어 이야기 해보자고 했어요. 저희 딸이 좋아하는 동요 중에서 일주일에 두 곡씩을 선정해서 제 블로그에도 올리고 엄마들과 함께 외워요. 엄마가 외우려면 여러 번 들어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아이와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죠. 함께 모여서 교구도 만들고, 수다도 떨고, 간식도 먹어요. 3월부터 시작했는데 우리 엄마들 그 사이에 정말 많이 늘었어요. 동요도 율동까지 열심히 외워오고 실수하면서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귀여워요. 우리끼리 출석체크도 하고 상도 줘요. 리더가 그런걸 참 잘해요.


써니와 또 엄마들과 공부를 하면서 예전에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때를 돌아보게 되요. 학부형들은 학원이 숙제를 많이 내줘서 아이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기를 원해요. 하지만 숙제를 많이 하고 일주일에 세 번 원어민 선생님을 만난다고 영어가 느는 건 아니거든요. 몇몇 뛰어난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그냥 왔다갔다만 하는 거에요. 그때는 저도 미혼이어서 시스템이 그냥 그런가보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엄마가 되어보니 학원비가 결코 적은 돈이 아니고 효과적으로 즐겁게 영어를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요. 그런 방법을 찾기 위해 영어 못하는 엄마가 어떻게 했나, 동시통역사 엄마가 어떻게 했나 책들도 많이 찾아봤어요. 그런데 중요한 건 책 찾아보느라 시간만 보낼게 아니라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고 해보는 거에요. 일단 엄마가 먼저 영어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재미있게 느끼게 해주는 게 중요해요.




이 엄마의 노하우

십 년 전 아이도 없었을 때 영어독서지도사 과정을 이수했어요. 제가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이에게도 책만큼은 한 권 한 권 골라서 사주고 싶어 서점을 자주 나가요. 영어책은 특히 노부영 같은 외국출판사에서 나온 것을 선호하는데 주로 알라딘 같은 중고서점에 가서 책 상태를 보며 사요. 영어책 중에는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 책도 많아서 엄마가 내용을 알고 구입 하는 게 중요해요.


아이가 궁금증이 폭발하는 시기가 되니 스스로 충족할 수 있는 세이펜을 활용하는 것이 좋았어요. 물론 엄마가 직접 읽어 주는게 가장 좋지만 항상 해줄 수도 없고 요즘 세대 아이들에게 미디어 노출은 필요악인 것 같아요. 일일이 파일을 다운받고, 책마다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을 해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아이가 정말 좋아해요. 사용법이 어렵다면 세이펜에서 무료로 해주는 세미나를 찾아가보는 것도 좋아요. 무료강좌인데 세이펜 사용법 뿐 아니라 책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팁이나 영어교육 전반에 관한 내용을 강의해줘서 영어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엄마가 듣기에 괜찮아요. 아이 교육에 관한 여러 의견과 방법들 중 무얼 택할 것인지 결국 옥석은 엄마가 가려야하는거고요.


저는 육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을 아는 것. 내 한계를 알고 끌려 다니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엄마가 못하면서 아이한테 구태여 시키는 건 안되죠. 하지만 아이로 인해 그 한계마저도 한단계 도약할 수 있더라고요. 엄마도 아이와 함께 발전하는 거죠.




아이로 열리는 세상

저는 농담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해요. 제가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게 그런 성격에서 기인한 것 같아 우리 딸도 유머감각이 있고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하고 두루두루 잘 지내는 편이긴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했는데 아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하니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아이로 인해 만남을 지속하다 보니 취향이 다른 사람과도 같은 아이엄마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생기더라고요. 사람을 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졌어요.


아이와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참 힘들었는데 이제는 아이 없이 혼자 무언가를 한다는 게 의미 없어졌어요. 아이 때문에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던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내가 생기는 거더라고요. 예전에 나 혼자 다니며 좋아했던 곳들을 딸과 같이 다녀보는 게 목표에요. 딸과 친구처럼 데이트 하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은영님과의 인터뷰는 노산에 저질체력이라는 고백으로 시작됐다. 누구보다 열심히 육아를 하는 리틀에디터의 자격으로 하는 인터뷰인데 시작이 이래서 어쩌나 살짝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짧은 인터뷰 내내 몇 번이나 통찰과 여유가 담긴 육아의 지혜가 쏟아진다. 육아를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기쁨과 보람, 성장에 관한 이야기였다.


젊고 체력이 좋은 나 역시 육아의 순간순간 바닥을 빤히 내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아이들 먹이고 입히느라 정작 나는 씻지도 못하고 라면 따위로 끼니를 떼우고 부지런히 한다고 하는데도 늘 헐레벌떡이다. 잘 참고 우아하게 견디면 참 좋으련만 몸은 점점 지치고, 별안간 폭발해서 화를 쏟아내는 이상한 아줌마가 돼버렸다.

그런데 그런 이상한 아줌마를 우리 아이들은 엄마라 부른다. 사랑한다 얘기해주고 손을 잡아 끌어준다.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고생에, 하지 않았을 노력을 하며 늘 아둥바둥 이지만,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낼 수 없었을 용기와 힘이 또 이 여정을 가능케 한다. 아이를 기르는 동안 나 역시 자란다. 너무나 힘든 이 길에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반짝이는 보석을 찾게 된다. 어떤 여행이 이보다 더 값질까. 엄마로 반짝이는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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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정리 이나연

사진 이문선

사진제공 김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