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며느리-아내의 균형잡기, 이재미


‘나’로 제대로 살기만도 만만치 않은데 결혼과 출산은 새로운 역할을 얹어준다.

어느날 갑자기 주어진 자리이건만 감당해야 할 무게도, 업무의 난이도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열심히 고민하며 살아간다.


여기 프로페셔널 엄마이자 며느리이자 아내로 조화롭게 살기 위해 열심히 고민하는 엄마가 있다. 가족 안에서 집사의 역할을 자처하며 유연성과 균형이 방법이라고 이야기하는 오늘의 엄마, 이재미님을 봄이 쏟아지는 양재천변에서 만났다.




who
이재미, 32살. 강남에 살며 국제학교를 준비하는 아이들의 영어교육을 담당 하고 있다.

6살 태연이의 엄마이자 시부모님과 6년째 함께 살고 있는 며느리이며 여전히 남편만 보면 설레는 아내다. 가족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고, 필요한 것을 챙겨주는 것이 참 즐겁다.




남편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아내

저는 육아에서 남편과의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남편을 많이 의지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남편과 제가 잘하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저희는 역할분담을 했어요. 저는 가르치는 일을 해서 그런지 설명해주고 새로운 것을 제안하는 것은 잘하지만 아이의 눈높이에서 친구처럼 놀아주는 건 못하거든요. 놀아주는 건 전적으로 남편의 몫이에요.


태연이랑 남편이 자주하는 놀이 중에 ‘전기파워’ 라는 게 있어요. ‘전기파워’라고 외치면 그걸 맞은 사람이 쓰러지는 거죠. 남편은 슈퍼마켓에서도 몸을 부르르 떨며 쓰러져요. 저는 옆에만 있어도 너무 창피한데 남편은 굉장히 뿌듯해해요.



제가 토요일 오후에 강의를 시작하면서 그날은 남편과 딸 둘이서 데이트하는 날이 되었어요. 둘이 아침부터 라면을 끓여먹고, 큰 음료수와 팝콘을 들고 영화를 봐요. 엄마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내는 아빠와의 시간을 태연이가 너무 좋아해요.

남편은 주변에서 초등학교만 가도 아이와 서먹해진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나 봐요. 그래서 이럴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잘해놓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고해요. 아빠랑 노는 아이가 사회성이 좋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유치원에서도 남자아이들과 잘 지내는 편이에요.


시부모님과 사는 것이 좋은 며느리


결혼하자마자 시부모님과 같이 살았어요. 물론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좋은 점이 많아서 앞으로도 분가 할 생각은 없어요. 저희는 가족의 역할이 분명해요. 아빠가 놀이 담당인 것처럼 할아버지는 무한애정 담당이세요. 할아버지와 함께면 텔레비전도 무한시청, 초콜렛도 무한리필이죠. 처음엔 그런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지금은 다 내려놓고 편해졌어요. 태연이가 할아버지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매일 옷을 갈아입으면 할아버지에게 바로 달려가요. 그러면 모든 남자애들이 반할만큼 멋지다고 잔뜩 추켜세워주시죠. 어떻게 할아버지를 안 좋아할 수 있겠어요.

반면 어머님은 교육자셔서 태연이에게도 엄격하세요. 예전엔 어머님이 더 다정하게 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집안에서 팬티만 입고 놀다가도 할머니가 들어오시면 옷을 챙겨 입고, 태도도 돌아보고, 혹 지적받을까 긴장하는데 아이를 위해선 필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태연이는 아흔이 넘으신 어른과도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아기도 귀여워해요. 시부모님과같이 살면서 모든 연령대와 잘 지내게 된 것 같아요. 집안에서도 엄마, 아빠 뿐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계시니 즐거운 요소들이 더 많지요.



강남의 영어선생님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강남 쪽에서 국제중학교를 준비하는 아이들이에요. 엄마, 아빠가 얼마든지 금전적 서포트를 해줄 수 있고, 유치원 때부터 영어교육을 받아온 아이들이죠.

저도 엄마이다 보니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어요.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아이들인데도 학원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안타깝다가도, 엄마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가 원해서 눈을 빛내며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 아이가 원한다면 사교육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소신 있게 한다고 태연이를 일반유치원에 보내고 사교육도 거의 시키지 않았어요. 그런데 얼마전 처음 한글 수업을 했는데 선생님이 이 동네 아이들은 5살 때 백까지 다 셀 수 있고, 한글도 6살엔 거의 뗀다고 빨리 따라가야 한다고 하시는 거에요. 전 우리 딸이 충분히 똘똘하고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또 고민이 되고 불안하고 그래요.



엄마만이 할 수 있는 엄마 역할

아이를 키우면서 주변의 말에 귀를 닫고 살 수 없어요. 때문에 종종 흔들리기도 하지만 내 아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면 아이를 위한 가장 좋은 시기와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어요. 내 아이를 아는 것이 엄마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인 것 같아요.

이 문제를 놓고 남편과도 많은 이야기를 해요. 내가 생각하는 태연이와 남편이 생각하는 태연이가 다르더라고요. 선생님이 보는 태연이는 또 다르고요.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태연이를 더욱 입체적으로 알게 되요.

태연이가 4살때부터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때 태연이의 의견을 많이 물어봐요. 유치원을 고를때도, 수업을 시작할 때도 같이 돌아다녀보고 선택했어요. 어린아이가 무슨 의견이 있겠어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아이도 자기가 원하는 바가 있고 두려워하는 것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친정엄마는 맨날 애한테만 휘둘리면 어떡하냐고 잔소리를 하세요. 아이가 싫어하는 것도 도전하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저는 아직까지는 태연이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면 분명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이 생길 테니 어릴 때라도 하고 픈대로 하며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부족할 때 비로소 넘치는 교육


저는 아이에게 넘치게 주는 것보다 조금 부족하게 주는 것이 아이로 하여금 본인이 원하는 것을 고민하고 찾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주변에서 아이들이 뭔가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전에 엄마가 알아서 아이의 욕구를 채워주는 경우를 종종 봐요. 물론 엄마가 아이의 성향을 너무 잘 파악하고, 아이가 엄마가 정해준 길을 잘 따라만 와준다면 그런 방법도 좋겠지만 전 조금 더 오래 걸리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아이의 첫 전집을 36개월에 들였어요. 돌 전부터 비싼 전집에 투자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흔들리기도 했지만 한 권 한 권 서점에 가서 아이와 고르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고, 그렇게 많은 책을 볼 수 있는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오래 참고 드디어 창작동화 전집이 처음 집에 왔을 때 책장에 넣기도 전에 책을 꺼내보며 좋아하고 몇 달 동안이나 그 책들을 놓지 않고 보았던 우리 딸의 모습을 기억해요. 본인도 그렇게 갈급했었던 거죠.

한글공부도 사실 딸이 5세 여름부터 관심 있어 했는데 계속 미뤘어요. 이제야 조금씩 선생님과 공부하는데 처음 방문선생님을 만나니 얘가 또 그 시간을 너무 기다리고 좋아해요. 적기 교육이라는 것은 엄마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맞는 바로 그때에 하는 교육인 것 같아요. 그때까지 엄마가 불안해하지 않고 기다리는 게 중요하고요.




내 딸 태연이

태연이는 정말 잘 웃어요. 우리 아이랑만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연극을 보는데 다른 아이들은 안 웃는데 우리 딸만 웃더라고요. 별거 아닌 것에도 꺄르륵거리면서요. 재밌는 걸 보고 웃을 수 있고, 슬픈 것에 울줄 아는 아이라서 참 좋아요.

또 태연이는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아이에요. 유니세프 부스에서 시리아 난민 아이들에 대한 설명을 잠깐 들었는데 그 이후 자기 전에 혼자서도 시리아의 아이들을 지켜달라는 기도를 하더라고요. 유니세프 한달 후원비가 2만원인데 이 아이들을 도와주려면 너가 장난감을 안사야 한다고 이야기했더니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해서 유니세프 직원도 놀랐대요. 아직까지도 갑자기 그 아이들이 생각나면 불쌍하다고 울어요.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많은 아이에요.



익숙해서 더 좋은 여행

태연이가 밝고 감수성이 풍부한 데는 여행을 많이 한 것이 큰 몫을 했던 것 같아요. 태연이가 여러가지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제 역할이에요. 남편과 시부모님이 해주실 수 없는 부분이죠. 몇 번 태연이랑 둘이서만 여행을 갔었어요. 저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 많아서 힘들었지만 그때의 추억들을 아직도 많이 이야기할 만큼 태연이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더라고요. 지금 둘째를 임신 중인데,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 꼭 둘만의 여행을 한번 더 다녀오려고 해요.



저는 뭐 하나에 꽂히면 계속 그것만 하는 성격인데 놀러 가는 것도 그래요. 제가 리틀홈에 올리는 리뷰의 대부분은 정말 여러 번 가서 마음에 드는 곳들이에요. 구석구석 보기 힘든 북촌과 삼청동을 잘 볼 수 있는 ​아띠 인력거는 세 번이나 탔고, ​월정사 전나무 숲길은 갈 때 마다 오솔길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기분이에요, 주문진은 일년에도 다섯 번은 가는데 태연이 혼자 새벽에 일어나 조용한 테라스에서 티타임을 가지며 좋아할 정도로 익숙한 곳이 되었죠.

처음 가서는 아이가 그곳을 제대로 알기 어려워요. 그런데 거듭 가면 갈 때마다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마음도 경험도 깊어지죠. 아이에게 가도 가도 또 가고 싶은 곳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어른이 되어서도 이런 곳들에 가면 엄마 아빠랑 즐겁게 놀았던 추억이 많이 생각 날 테고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재미님은 너무 평범한 엄마라 할 이야기가 있을지 모르겠다 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누구나 엄마가 된다. 하지만 당연히 얻은 이 자리는 아이가 첫 울음을 터트리는 그 순간부터 참으로 녹록치 않다. 아이와 나를 둘러싼 가정과 사회에서 잘 살아내는 것. 평범한 엄마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 그것은 결코 평범치도 쉽지도 않다.

엄마로서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가르치는 매 순간. 며느리로, 딸로, 아내로 살아가는 매일이 우리의 고민이고 노력이다. 행복한 균형을 잡기 위해 때론 포용하고, 때론 결단하며 참 열심히도 살고 있다.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그냥 엄마들의 매일은 그래서 결코 평범하지 않다. 오늘을 살고 있는 며느리이자 아내이자 딸이자 엄마인 모두에게 힘껏 박수를 보낸다.


​리틀에디터 이재미님의 리뷰 보기


인터뷰/글 이나연

사진 이문선, 이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