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두 배로 사는 엄마, 박보영


아이가 원에 가고 없는 시간은 꿀처럼 달콤하다. 할 수 있는 한 길게 나만의 자유 시간을 즐기고픈 것이 보통이건만 아이의 하원을 손꼽아 기다리는 엄마가 있다.

원은 마쳤지만 하루 해는 저물지 않았기에 매일 또 한번의 나들이를 계획하는 엄마. 엄마와의 나들이가 너무 좋아 ‘야호!’를 외치는 기특한 6살 아들. 

추운 겨울날씨도 아랑곳 않고 하루 해를 두 배로 즐기며 사는 야호맘님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왔다.



Who


야호맘 박보영. 41세. 피아노가 너무 좋았지만 남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 부끄러워 작곡을 전공으로 택했다.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남동생에게 이끌려 까마득한 슬로프 위에 섰던 날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방학마다 주말엔 피아노 레슨, 주중엔 스노우보드를 탔다. 온몸에 멍이 들고 뼈가 부러져도 깁스를 한 채 눈밭으로 달려갔다. 각종 전국 스노우보드 대회들에서 2,3등을 수상하고, 캐나다 국제 스노우보드 강사 자격증(CASI)을 땄을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은 기어이 그것도 아주 잘 해내고야 만다.

면사포 하나만 쓰고 멋지게 미끄러져 내려오는 설원 결혼식을 꿈꿨다. 아이도 낳지 않고 전세계의 눈밭 위를 훨훨 날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보드를 신어본 적도 없는 동갑내기 남편과 엄마를 감동시키는 아들과 함께하는 매일이 더없이 행복하다.




Being mom

자연이 키워준 새까만 아이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어요. 그래서 무주 친가와 금산 외가를 오가며 자랐어요. 사촌들과 어울려 계곡에서 놀고, 큰 바위에 누워 햇빛에 몸을 말리고, 색색의 꽃을 따서 소꿉놀이를 하며 노는 게 일상이었어요. 어릴 적 사진을 보면 머리는 산발에 새까맣게 타서는 영락없는 시골아이에요. 그때의 추억이 너무나 좋게 남아 있어서 아이를 데리고 자연을 많이 찾아가요. 친정엄마도 산악회 활동을 하실 정도로 산을 좋아하셔서 아이가 4살때부터 등산을 함께 했는데 산에서 만나는 분들 모두 어린아이가 여기까지 올라왔냐며 놀라시더라고요.



계획을 세우는 엄마

임신했을 때부터 아이랑 어딜 가면 좋을까 생각하면서 정보가 생길때마다 메모해뒀어요. 초등학생이 되어 가면 좋을 곳 까지요.

정보를 찾을 때 블로그는 참고하지 않아요. 항상 레이더를 켜고 길에

달린 현수막, 여행잡지 등을 살펴보죠. 한달 단위로 어디 갈지를 계획해요. 달력에 그달에 하는 전시와 축제부터 적어요. 그날 갈수 있을지 모르더라도 일단 다 적어놓는거죠.




장소를 선정할 때 어린애가 갈수 있는 곳인가를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제가 가고 싶으면 아이도 같이 가는 거에요. 중간에 돌아오는 법은 없어요. 무조건 끝까지 가는 거에요. 사람들 많은걸 싫어해서 어딜 가든 새벽부터 나서서 매표소 문 열기 전부터 기다려요. 아이가 단 한번도 투정하지 않고 잘 따라와서 그게 힘들고 대단한 일인 줄도 몰랐어요.


무엇이든 내가 좋아하는 것은 꼭 잘해야 해요. 이유식 먹일때도 평소에 음식하는 걸 싫어했는데도 절대 냉동을 해선 안먹이겠다 마음먹고 그때 그때 해먹였어요. 친구들이 이유식 책을 내라고 할 정도로요. 아이랑 돌아다니는 것도 주말은 당연하니까 평일 하원 후까지 촘촘하게 다니는 거에요. 서울은 조금만 나가도 체험할 곳이 많잖아요. 6시에 문닫으니 시간은 넉넉해요.


어딜가든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 많길래 다들 저처럼 다니는 줄 알았어요. 최근에야 그렇지않다는 걸 알았죠. 아이가 기억도 못할걸 왜 그렇게 돌아다니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제가 다니는 모습을 보고 점점 주위사람들이 변화되더라구요. 친구 남편들까지도 제 정보를 참고할 정도에요. 제가 다녀온 곳을 따라다녀와서  '우리 가족 너무 잘 다녀왔다', '아이가 너무 좋아했다'는 이야기와 사진들을 보면 행복하고 보람있어요. 정말 흔치 않은데 리틀홈에는 저같은 엄마들이 많아서 너무 반가워요.




My family

내게 너무 특별한 부모님

일하시느라 바쁘셔서 주말엔 쉬고 싶으셨을 텐데도 부모님은 그렇게 저희 남매를 데리고 다니셨어요. 아빠는 그 시절에 큰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매고 어딜 가든 우리를 찍어주셨죠. 자연스러운 포즈를 잡으려고 사진 한 장 찍는데도 요구사항이 많으셨어요. 노는데 있어서 만큼은 정말 극성이셨죠. 덕분에 어린시절 사진과 추억이 정말 많아요.

그러다 초등학교때 아빠가 갑작스레 돌아가셨어요. 엄마는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40년을 일하시며 혼자 저희 남매를 키우셨어요. 아빠의 빈자리를 느낄 새가 없을 정도로 저희가 하겠다는 일은 항상 지원해주시고 믿어주셨죠. 부모가 되고 나니 엄마가 우리를 어떻게 키웠는가가 보이더라고요. 많이 힘드셨을텐데도 엄마는 저희에게 큰소리로 화내거나 짜증 한번 낸 적이 없으세요. 그 생각을 하면서 저도 짜증을 참을때가 많아요. 


자라는 내내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 아빠와 함께한 추억들이 정말 큰 힘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내 아이에게도 그런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도 힘들 때마다 엄마랑 아빠랑 다녔던 좋은 추억으로 헤쳐나가겠거니 하구요.

이제는 제가 엄마가 좋아하시는 곳을 찾아서 함께 가요. 다행히 남편도 장모님을 어려워하지 않고 아이도 외할머니와 잘 맞거든요. 자식과 엄마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제가 제일 행복하죠.




여수가 고향인 동갑내기 남편

제가 남자를 고르는 조건은 딱 두 가지 였어요. 시댁이 멀지 않고, 동갑이 아닐 것. 그런데 여수가 고향인 동갑내기랑 결혼을 한 거에요. 결혼 전에는 외가인 금산 아래로는 내려가 본적이 없었거든요. 남자친구 집에 인사 드리러 갈 때 처음으로 더 멀리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 덕에 우리나라에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 많은지 알게 되었어요. 명절에 시댁에 내려가는 것이 저희 가족에겐 여행의 기회에요.

아이랑 놀러 다니면서 살림까지 완벽하게 할 순 없어요. 남편이 까다롭지 않아서 가능 한거죠. 혼자 저녁도 잘 챙겨먹고 아직도 아이 옷만큼은 남편이 손빨래해요. 남편이 회사에 있느라 평소 아이의 모습을 못 보는 게 안타까워서 남편을 위해 싸이와 카스에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쓸 때도 아이의 행동과 말을 자세히 남기려고 노력해요. 회사 점심시간에라도 열어 보면 아이에 대해 이야기할 거리가 생기잖아요. 아들이 너무 좋지만 마지막까지 제 곁에 남는 건 남편일 테니 남편에게 잘해야죠.




내 아이의 옆집 형제

바로 옆집에 태어날 때부터 친구인 아이가 살아요. 엄마가 워킹맘이신데 주말마다 아주 열심히 아이랑 놀러다니시더라고요. 그런데 평일에는 집에만 있어야 하니 그 엄마도, 그 아이도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그게 헤아려져서 친구랑 함께 가면 좋을 곳들은 함께 데리고 가요. 저도 엄마가 일하셔서 어렸을 때 옆집아줌마네 애들이랑 형제처럼 자랐던 기억이 있거든요. 다들 남자애 둘을 어떻게 데리고 다니냐고 하는데 저는 그리 어렵지 않더라고요. 찬찬히 둘러봐야 하는 곳은 아들과 단 둘이, 실컷 떠들고 뛰어도 되는 곳은 옆집아이와 함께 구분해서 다니지요.




My kids

준비된 아이 도호

결혼 전에 저는 아이를 너무 싫어했어요. 어쩌다 레스토랑에서 아이가 옆에 앉으면 자리를 바꿔달라고 할 정도였어요. 결혼해서도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는데 3년만에 아이가 생긴 거에요. 

그런데 제가 어려서부터 애는 싫어하면서도 나중에 건강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에 담배 피는 사람과는 소개팅도 안했거든요. (웃음) 임신하고도 태아가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에 물도 골라 마시고, 비타민과 미네랄, 프로틴, 오메가3, 유산균들을 꼬박꼬박 챙겨먹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의사선생님이 애가 너무 탄탄하다며 칭찬하시더라고요. 


아이가 백일 되었을때 날씨가 너무 좋아서 아침 일찍부터 친정엄마와 놀이동산에 갔어요. 저랑 엄마가 이런데는 극성이잖아요. 여기까지 왔으니 아이한테 야간 퍼레이드를 꼭 보여줘야겠다고 아이가 잠들까봐 계속 깨웠어요. 드디어 퍼레이드가 시작되고 아이를 들어 보게 해줬더니 끝까지 다 보더라구요. 차에 타니 그제야 잠이 들었어요. 



시댁이 순천이라 백일부터 명절에 내려가는데도 이제까지 5년동안 6시간이 넘는 시간을 한번 울거나 찡찡 거린적이 없어요. 카시트에 앉아서 경치를 감상하며 콧노래를 부르며 가요.

체력이 좋아서 장거리를 다니는 것도 문제 없고, 가면서 차에서 자도 도착하면 바로 일어나요. 어떤 곳을 가도 못보고 못 돌아다닌 적이 없어요. 그러니 입장료를 얼마를 내도 아깝지 않고 더 데리고 다니고 싶어요.


두 배로 사는 아이

저는 유치원 빠지는걸 싫어해요. 그래서 아무리 놀고 싶어도 하원 후에 가는거죠. 어려서 다녔던 짐보리부터 지금 유치원까지 항상 개근상을 받았어요.

주변에서 다른 애들은 원에만 다녀와도 피곤한데 또 놀러 가면 도호가 너무 힘들지 않겠냐고 하더라구요. 그때 깨달았어요.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두 배로 사는구나. 하루를 이틀로 쓰고 있구나…



감동을 주는 아이

한번은 차를 타고 가는데 도호가 ‘엄마 꿈은 뭐야?’ 물었어요. 저는 돈이나 명예보다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거든요. 한번도 지금 내가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지금 내가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도호 엄마가 되었지. 엄마가 도호 엄마가 안되서 도호를 못 만났으면 어쩔뻔했지’ 라고 답했어요. 그 대답을 듣고 도호가 소리없이 울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저도 울컥했죠. 남자 아이지만 마음이 여리고 엄마의 마음을 잘 읽는 아이에요. 제가 아플 때 곁에 함께 있어줄 만큼 엄마를 챙겨주고 위로해주는 아이에요.




나의 기록, 나의추억, 나의 선물

결석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매년 5월 도호 생일에는 현장학습 보고서를 쓰면서라도 꼭 여행을 가요. 가장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고 도호 백일 때부터 해왔던 행사거든요. 매년 백일 때 사용했던 가렌드를 챙겨서 그날 묵는 숙소에 걸고 생일기념 사진을 찍어요. 해마다 조금씩 커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게 참 의미있어요. 도호 장가가기 전까지 계속하고 싶어요.  


조리원에 있을 때부터 싸이월드에 1일차, 2일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이 사진을 올렸어요. 4년을 하루도 빠짐 없이요. 그게 가능 했던게 어려서부터 일기를 쓰는 것이 습관이거든요. 카스가 나오고부터는 카스에 또 그렇게 기록을 해요. 그래서 리틀홈에 리뷰를 올리는 것도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사진 찍고 글을 쓰는 것이 일상이었으니까요. 우리 부모님에게 제가 받은 것처럼, 도호에게도 이 기록을 선물해주고 싶어요. 도호의 인생에 힘이 되길 바라면서요.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이를 키울수록 정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미술을 보고, 음악을 듣고 이런 정서 뿐 아니라 다른이와 만나서 자유롭게 교류하고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거. 그런 정서가 허기지지 않은 아이로 키우고 싶어요. 눈에 보이는 상처에는 민감하지만 마음이 다치는 것은 놓치기 쉽거든요. 그래서 항상 아이를 잘 들여다보게 되요. 마음 안에 곪은게 있진 않을까 하고요.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그렇게 열심히 데리고 다니는 게 아니에요. 하고 싶은걸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하는거에요.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건 소박한 꿈이 아니라 아주 힘든 거거든요.



Epilogue


‘엄마 어디 갈지 미리 얘기해주지마. 당장 가고 싶잖아!’

‘엄마 나 오늘 너무 재미있었어. 행복했어’

‘엄마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펼쳐질까?’

‘엄마 나는 매일이 크리스마스 같아.’


아이의 매일을 준비하는 엄마. 그래서 매일 매일이 크리스마스처럼 좋다는 아이. 그 덕에 매일이 보람 있고 행복한 엄마. 

나 역시 아이들과 잘 놀러 다니는 엄마로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보영님과 인터뷰를 하며 내 머릿속엔 동그랗고 예쁜 고리가 그려졌다. 아이와 엄마의 삶은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하나의 고리로 둥글게 돌아간다. 

우리는 아이를 위해 희생을 하지도, 놀아 주지도 않는다. 그저 아이와 함께 하루를 살고 즐겁게 놀 뿐이다.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사랑은 없다. 모두 주고 받는다. 내가 흘려 보낸 만큼, 아니 거기에 포동포동 살이 올라 더 따뜻하게 돌아온다. 그 순환의 비밀을 아는 엄마들은 오늘도 유난스런 하루를 준비할 수밖에.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로 인해 더 행복해질 나를 위해서.



인터뷰/글 이나연

사진 이문선

사진제공 박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