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노는 법’을 연구하는 엄마,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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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놀아주고 싶은데 엄마 몸이 너무 힘들다. 아이가 한 명만 있어도 에어컨을 틀어놓았는지 안 틀어놓았는지 모를 더위에 지치기 일쑤인데 아이 둘을 데리고 놀아주는 엄마가 있다. 아이를 잘 놀게 하는 것이 엄마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것이라고 말하는 똑 부러지는 지안이와 정우의 엄마를 만나러 그들의 아지트인 집으로 찾아갔다.



WHO

이나연, 서울 삼성동에 살고 있는 5세 딸과 3세 아들의 엄마.

아이들을 위한 미술작업과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미술학도에서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잘 노는 법’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엄마의 감성을 쏙 빼 닮은 지안, 정우 남매는 그림 그리는 것과, 커다란 모닝빵을 손에 쥐고 먹는 것을 특히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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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 모래 놀이터

정우가 모래놀이를 참 좋아하는데 요즘은 모래놀이 할 곳 찾기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서울숲 모래 놀이터가 참 좋아요. 이 곳의 최대 장점은 바로 옆에 수도꼭지가 있다는 거에요. 모래놀이는 물이 있고 없고에 따라 놀이의 차원이 달라지거든요. 물 뜰 도구만 가져가면 수도에서 물을 계속 떠다 나르며 해자도 파고, 큰 성도 만들어요. 그렇게 놀고 있으면 주위에서 놀던 형들이 와서 큰 삽질도 도와줘요. 그러면 판이 커지고 자연스럽게 여러 아이들이 섞여 놀게 되죠. 그런 경험이 하기 쉽지 않은 요즘, 참 즐거운 시간이에요.


에디킴의 <너 사용법>

요즘 가장 좋아하는 노래에요. 아줌마가 되어버린 여자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곡이랄까? 결혼하고 애 낳고 나면 하루 종일 다른 식구들에게 신경을 쏟고 있다 어느 순간 공허해질 때가 있거든요. 이제 나에게 맞춰주는 사람은 없으니까. ‘나를 이렇게 대해달란 말이야’ 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사가 마음에 들어요. 말랑말랑한 감성도 좋고요.


이수 떡볶이

원래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데 아이들 때문에 매운 음식을 자주 못 먹어요. 그런 불만족을 한 번 해소해준 음식이 있었는데, 바로 동네 엄마들과 공동구매 했던 이수 떡볶이에요. 30인분이면 무료 배송을 해준다고 해서 잔뜩 사서 나눴어요. 떡과 소스가 1인분씩 포장 되어있어서 울적한 날에 혼자 해 먹었어요. 쉬운 조리법에 MSG가 첨가된 매운 맛이 참 좋았어요. 이젠 다 먹어버렸는데 도무지 30인분은 살 수가 없어서 아직 추가로 더 못 사고 있어요. 공동 구매하실 분 찾아요!(웃음)


비 내리는 전주 여행

얼마 전에 갔던 전주 여행이 좋았어요. 아이들에게 기차 한번 태워주려고 떠난 여행이었는데 일단 KTX 내부가 너무 좋았어요. 매점 칸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좌석도 넓고, 유아 동반으로 구매하면 아이들 좌석도 상당히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고요.

1박2일 일정으로 갔는데 밤새도록 비가 왔어요. 그런데 저희는 그 경험이 오히려 참 좋았어요. 한옥에서 하루를 지냈는데 아이들이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난생 처음 들었거든요. 사실 아파트에선 비가 와도 잘 모를 정도니까 평소엔 들을 일이 없는 소리지요. 빗방울이 처마를 타고 떨어지는 걸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구경하고, 온돌방에 누워 ‘빗소리가 너무 좋다’고 작은 입으로 종알거리는걸 들으며 흐뭇하게 잠들었어요. 비가 올 때마다 오랫동안 생각날 것 같아요.



BEING MOM

나의 육아 원칙

저는 제 자신이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육아를 하다 보니 내 의지보다 아이에 의해 움직여지는 경우가 많아 너무 괴롭고 힘든 거에요. 내가 없어지는 기분이 들어 우울증이 오기도 했어요. 그걸 극복하기 위해 제가 세운 육아원칙은 ‘엄마가 행복하고, 편안해야 한다’ 에요. 엄마가 편하다는 건 아이를 방치하는걸 말하는 건 아니에요. 아이가 스스로 놀 때 엄마만의 시간과 공간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편해지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잘 노는 법을 알려주는 것에 특별히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잘 노는 법의 중요성

사실 무조건 자유롭게 놀아라 하고 내버려 두면 될 것 같지만 그건 어린 나이의 아이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에요. 엄마가 아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해하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해요.

엄마는 놀이의 화두를 던져주는 거에요. 장난감이 될 수도, 엄마와 읽은 책, 같이 가 본 장소와 경험이 될 수도 있어요. 그렇게 하나를 주면 아이가 거기서 파생되는 놀이와 이야기를 만들고, 그 시간들이 쌓여 점차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놀기에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장난감이나 책을 고르는 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놀이의 확장이 가능한, 아이들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으로 주의해서 골라요.



함께 잘 어울리는 남매

저희 집 남매들은 서로를 챙기며 참 잘 어울려 놀아요.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두 아이의 사이가 돈독했던 것은 아니에요. 둘의 성별도 다르고, 15개월 차로 터울도 적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죠. 그 문제를 해결하려던 때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정우를 낳고 1년 정도는 지안이가 상실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데에만 집중했어요. 그런데 정우가 돌 즈음 되니 첫째도, 둘째도 엄마만 찾더라고요. 그 후 1년은 매일 울면서 아이들을 재웠던 것 같아요. 얘네 둘을 동시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얘도 울고, 쟤도 울고, 나도 울고. 셋이 그렇게 울다가 지쳐서 잠들곤 했죠.

그래도 셋이 뒹굴면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를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이런 눈물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아이들이 노는 것을 편하게 지켜볼 수 있는 시간도 생긴 거죠. 


쿨(?)한 엄마의 소신

지안이가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학원에 보냈는데 처음 한 달을 수업 내내 동작 하나 안 따라 하는 거에요. 계속 딴짓하는 걸 보는데 화가 나더라고요. ‘쟤는 혼자 왜 저러고 있지?’ ‘내가 너무 애를 제멋대로 놀게만 해서 그런가?’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니 너무 창피하고 조바심이 나는 거에요. 저는 나름대로 소신 있는 쿨한 엄마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이 커갈수록 난 그저 ‘소신 있는 척’하는 거였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자유롭게 놀며 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문득문득 찾아오는 염려와 불안은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되도록 다른 가정의 육아방식을 안 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계속 마인드 컨트롤도 하구요. ‘못해도 괜찮아’, ‘자기 삶을 즐길 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해’하면서. 육아는 참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고 끊임없이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 일인 것 같아요.



MY KID

평생 자동차만을 사랑해온 정우

우리 아이들의 관심사는 제법 명확해요. 정우는 자동차, 오직 자동차뿐이죠. 생후 8개월 정도부터 꾸준히 자동차 사랑이 이어져오고 있어요. 가만 보니까 아이의 관심이 점점 확장이 되어 가더라고요. 아기 때는 바퀴에 관심이 많았어요. 자동차를 분해해서 바퀴만 손에 쥐고 다녔지요. 그리고 어느새 자동차 전체로 범위가 넓어졌어요. 자기 손에 들어오는 자동차가 관심 대상이었죠. 그 다음 단계로는 자동차를 여러 대 태울 수 있는 트레일러 종류를 좋아하고, 이제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만드는 것에 주력하고 있어요.


우아한 공주 지안이

지안이의 관심사는 공주에요. 전에 지안이 또래 딸을 키우는 엄마들과 아이의 그림에 대한 고민을 주고받은 적이 있어요. 다 비슷하게도 ‘아이가 공주만 그려요’, ‘핑크만 좋아해요’ 였어요. 그런데 저는 여자아이들이 공주를 보고 좋아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공주가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건 빤짝이나 촌스러운 핑크 컬렉션을 공주의 대명사로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러나 사실 누구보다 럭셔리하고 우아한 존재가 바로 공주잖아요. 핑크는 얼마나 사랑스러운 색인데요. 아이가 좋아하는 공주와 핑크를 엄마의 감각으로 조금 더 세련되게 꾸며주면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면서 엄마도 불편하지 않을 수 있어요. 의상이라면 핑크에 그레이나 화이트를 적절히 매치한다던가, 소재를 조금 좋은 것으로 골라주면 되요. 액세서리나 책, 스티커 등 부담스럽지 않은 소품으로 기쁘게 해주는 것도 방법이에요.


우리 아이들의 놀이

지안이는 요즘 아크릴 물감으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요. 아크릴 물감은 가격도 비싸지만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아이가 쓰기엔 어려운 재료에요. 지안이도 처음부터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지금이 있기까지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 듯 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린이용 물감이나 크레파스, 색연필, 사인펜 같은 재료들은 엄마 도움 없이도 언제나 꺼내어 놀 수 있도록 아이들 손이 잘 닿는 곳에 두었어요. 덕분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도 많았지만. (보라색 물감을 자신과 동생 몸, 방 전체에 칠했던 보라괴물 사건은 주변에서 유명했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재료의 특성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그림 그리는 것을 놀이처럼 여기고 좋아해요.

정우는 요즘 혼자 이야기를 하면서 자동차 놀이를 해요. 자동차 여러 대를 가지고 나름의 역할놀이를 하죠. ‘너는 날 수 있어?’ ‘날아가려면 날개를 만들어야지’ 하며 자동차들끼리 대화를 시켜요. 정우가 말이 좀 더딘 편이었는데, 요즘은 말 하는 걸 넘어서 이렇게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서 노는 것 같아 기특해요. 무엇보다 얘기를 하면서 놀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놀이시간이 길어지니 엄마도 더 편안해요.



엄마의 바람

저는 아이의 삶과 나의 삶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육아는 제 인생에 주어진 여러 과제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수행해야 하죠. 적어도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 작은 목표에요. 그저 먼 훗날 아주 쿨하게 ‘너희들과 함께해서 나도 참 즐거웠어’ 라고 인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 단순히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껏 꿈꾸며 상상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생각하지 않고 그 순간 느끼는 대로, 표현하고 싶은 대로 마구 분출하는 아이 꿈의 조각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그럴 수 있도록 묵묵히 지켜봐 주는 엄마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편해지기 위해서 노는 법을 제시한다고 하지만 엄마는 안다. 오늘도 아이들과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더 재미있게 놀 것들을 골똘히 궁리하게 될 것을.





기획, 인터뷰/ 이다희

사진/ 이문선

글,수정/ 이현주